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망각.

일정 시간이 지나면 특이하게도.
그러나 결국엔 결국 또다시 그 뚜껑을 열어보곤.

쓰레기통은 쓰레기를 담는 통을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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냄새. 낌새.

그러나 간혹 그 내면이 순간순간 슬쩍 드러나 보일때가 있기도 한 것 같다.
그럴때면 다시 사회화를 위한 전략 - 들었을 때 눈치채지 못하게 흐믓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언어 구사 - 을 사용하곤 하는 것으로 보인다.

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약간의 위험이 있지만, 그들의 기준으로 보았을때 장기적이라는 말은 찰나에 불과한듯 하다. 하지만 그 모든것이 탄로날 경우 속수무책으로 모든 것을 잃는 듯 보이는데, 그러나 그것도 찰나의 시간을 견디어 내기만 하면 회복이 어느정도 되는것으로 보인다. 그들의 가장 신비한 습성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망각이 아닌가 싶다.

망각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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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식.

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식되는 가에 있는 듯 하다.
번듯한 멋진 쓰레기통.
단단히 닫아 놓기만 한다면 그다지 냄새가 나진 않는다.

냄새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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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성.

그것은 쉽게 말해;
관계 손상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들키지 않는 정도의 듣기 좋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. 유통기한을 넘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것은 유효하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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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계.

그것은 사실 처음부터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.
다만 훈련을 통해 유통기한이 지난 관계일지라도 묵묵히 소화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을 사회인의 성공적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. 그리고 그것은 흔히 사회성이라 불리곤 한다.

사회성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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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과 행동.

그것은 사실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.
단지 중요한 것은 그 말 혹은 웅변을 들어줄 관객 혹은 증인 확보이다.
만약 어느새 행동의 부재를 눈치채는 관객의 수가 많아진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. 그저 다른 새로운 관객을 확보함으로서 그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되는 것으로 보인다.

중요한 것은 관계의 시기적절한 청산과 관객의 확보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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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. 말투.

그것은 이런것과 같은 이치이다.
월드 피스 - 그것은 이루어야 할 가치가 아닌 외쳐야 할 가치이다.

말과 행동은 굳이 같아야 하는가.